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아멘!!

 

 

예수님은 천국을 진주에 비유하셨습니다. 진주를 가진 자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주이기에 값을 매겨 사고 팔지 않습니다. 이 처럼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냅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지극히 값진 천국 복음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복음은 비교활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절대 불가능을 고백할 때 가능의 증거를 보이십니다. 어린 양의 보혈 (출3:18)로 말미암은 출애굽의 기적과 임마누엘 (사7:14)을 붙잡은 출바벨론의 회복은 속국이었던 이스라엘이 흩어지고, 회복된 것 (마16:16) 역시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전도와 선교의 축복이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성경은 시대마다 아무도 풀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한 증인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바벨론의 포로와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Remnant들은 복음만 전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를 살리는 해답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값진 진주와 같은 복음을 받은 자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이드로 장로, 기생 라합, 중직자 오바댜, 사르밧 과부, 수넴 여인의 작은 헌신이 시대를 치유했습니다. 부족한 나의 작은 헌신 역시 미래를 살리는 응답으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언약 기도] 하나님! 값진 복음의 가치를 알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 복음으로 치유의 증인으로 서게 하옵소서.

 

[성경읽기] 창세기 45~46장, [성구암송] 이사야 60:1

 

 

[깊은 질문]

 

Q. "뭣이 중헌디?"

 

어부지리(漁父之利)

두 사람이 서로 싸우는 사이에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눈 앞의 이익만 생각하다 보면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전국시대 연나라의 대신이던 소대가 이웃 조나라 혜문 왕에게 화친을 권하면서 이야기한 내용에서 비롯한 고사입니다.

 

 

소대는 조나라 혜문 왕을 만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곳에 오는 길에 역수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입을 열고 있는 조개를 보았습니다. 그때 마침 조개를 본 도요새가 조갯살을 먹으려 부리를 조개 입 속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조개가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둘이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어부가 둘을 잡아 가버렸습니다. 연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싸우면 이는 옆에 있는 진나라에 이익을 주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 출처 ㅣ 기획집단 MOM, 신동민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찮아서가 아니라 가치를 비교할 수 없어서입니다. 그런 것은 대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영원합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을 위해 목숨을 걸지 마십시오, 오직 영원한 그분만 바라보면 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료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18)

 

 

- 2020.01.08 기도수첩 -

 

 

[나의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결론난 인생으로 살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소서. 말씀으로 영혼을 맑게 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언약이 성취되게 하소서. 인도하신 현장에서 빛의 자녀로 사용하시고, 복음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게 하오며, 연단의 시간 속에서 평강의 열매를 얻게 하소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처럼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만 드러내는 갈라지아서 2장 20절 말씀이 성취되게 하소서. 빛의 대열에 있게 하시고, 영적 서밋으로 인도 하소서. 축복된 인생을 살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기쁨이 함께 하소서. 이 모든 말씀 주계 드리오니 하나님 홀로 영광 받아 주옵고, 지금도 함께 하시는 평강의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Posted by 야곱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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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장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선물

 

2018년 11월 18일 주일 청년예배. 다니엘의 감사 신앙이라는 주일 3부 예배 후 어김 없이 방송실에서 청년예배를 드렸다. 이 날은 특별히 자막도 준비하면서 알찬 주일을 맞이 했었다. 먼저 청년예배 시스템을 짤막하게 소개하면 총 네 가지 시스템을 다루고 있다. 음향, 조명, 자막, 스위처. 이 중 음향과 자막은 예배가 시작되기 40분 전부터 분주하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찬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 세팅에 들어간다. 무대 위에 오르는 성도의 수에 따라 마이크와 음향을 세팅해야 하며, 30분 전부터 리허설에 들어가서 가장 최선의 음향 상태를 마추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자막은 예배가 시작되기 전 찬양 가사를 자막기에 세팅하여야 하며, 설교 시 필요한 메세지를 입력해야 한다. 그래서 예배가 시작되기 40분 전부터 자리에서 예배 준비에 들어간다. 조명은 예배 시작 전 10분 전 자리에서 대기하여야 하며 스위처는 유튜브 생방송 준비를 하면된다. 그리고 라이브가 진행될 시 자리에서 대기하기 때문에 예배 전까지 음향과 자막 시스템을 맡은 청년들 보다 조금은 여유롭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일까?

 

 

다시 과거로 돌아가 나는 6년 전 교회 방송실로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아무것도 모른 체 시작된 방송 시스템과의 만남. 영상이라는 맹목적인 이상향만 쫓다가 카메라를 잡았고, 어느 순간 스위처라는 시스템을 다루게 되었다. 그리고 청년예배 방송시스템을 총괄하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김없이 청년예배 방송실에서 드렸던 2018년 11월 18일. 찬양 악보를 담당하는 청년이 카톡으로 파일을 보내왔다. "형 오늘 프린트가 고장나서 프린트를 못했습니다. 밑에 악보로 쓰시면 될거같아요!" 자막 시스템을 다루는 청년이 장결자와 식사를 하면서 나는 자막을 준비하게 되었으며, 똑같은 파일을 두개 보내주었다는 자막을 화면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잠시후 프린트를 뽑아서 가져온 청년. 무심하 듯 OK라 말하고, 자막을 준비하였다. 솔까 그 자막 프린트가 없어도 준비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없으면 넘어가려 했던 나였기에 프린트를 가져온 청년에게 그닥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처음 방송실로 성령 인도를 받을 때와 지금의 나는 그만큼 나는 간절하지 않은 것일까? 다급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책임은 하나님이 지신다는 평안함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했으니 찬양 악보를 가져다 준 청년이 목이 말랐을 거라 생각한다.

 

 

 

서론)

 

복음의 핵심-회복

 

 

창세기 1장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청년예배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설교 메세지는 '하나님의 선물' 복음의 핵심으로 시작된 메세지는 창세기 1장 27절~28절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라는 말씀이 나왔다. 개인에 대한 말씀이다. 이는 곧 나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무엇을 다스리는 것일까? 성령은 나를 방송실로 인도하였고, 시스템을 다루게 하셨다. 말씀을 적용하는 나의 삶이 교회 현장에서 이렇게 적용되는 것이라면 나는 직장 현장에서 무엇에 적용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쓴 후 발행을 하면 다음 포털 사이트에서 보여지겠지? 어떤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어느 위치에 노출이 될 것인지... 솔까 가늠하기 힘들다. 제목대로 검색한다면 분명 제일 상단에 보여 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목대로 얼마나 검색을 할까? 그래서 특정 키워드를 공략하기 위해 몇 가지 루틴을 만들고, 로직에 마추어 조정을 한다. 최대한 높은 곳에 보여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물론 메인은 다음이 아니라 네이버다. 네이버 포털은 경쟁이 심하다. 심각하게. 하루 1만 명이 들어오는 블로그들이 수두룩하다. 그 경쟁을 뚫고 올라가야 한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내 위장은 아려오고, 나는 또 병원을 가야할 지도 모른다. 약은 약대로 먹어야 하니 말이다. 세상이 힘들다고 말하는 건 개인에 대한 경쟁이 심해서 개인인 나는 항상 지끈 거린다.

 

 

창세기 2장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번 포스팅은 꽤나 길어질 거 같다. 늦어도 내일까지는 올려야 수요예배 포스팅도 준비할 수 있을텐데... 목사님들은 이런 고민을 항상하고 있겠지? 영의 깊이는 끝이 없고, 한 없이 넓고, 말씀은 그 무엇보다 높은 곳에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적어보자면 개인에 이어 가정에 대한 말씀이 담겨 있다. 마지막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탐욕의 정욕을 벗어나 가정에 대한 말씀은 이해하기 힘들다. 아직 겪지 못한 일이니 공감되지 않는다. 언젠가 겪게 될 일일 수도 있다. 아니 절대 겪어 보지 못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곧대로 해석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니 한심하다.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까? 결혼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해야 하는 것을까? 몇 년 전부터 부모님은 괜찮은 처자를 집으로 데려 오라고 하신다. 아직 그런 사람 없는데 어디서 만나라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어 괜찮은 사람 없어? 라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너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해야지였다.... 맞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 정말 어렵다. 이것도 기도로 응답 받아야 하는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직 오직에 대한 기도가 없어서 그런것일까?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나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이 결혼해서도 행복하다.

 

 

 

이사야 43장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는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하루에 한 번 하나님을 만나는가? 현장에 대한 메세지를 전하면서 주신 말씀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게 주어진 현장에서 나는 행복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yes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한 후,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회사 현장으로 출근한다. 사무실에 온 나는 부모님이 보내주신 사과를 깎고, 커피를 내리며 이사님과 차장님, 대표님, 두 명의 동생들을 기다린다. 물론 이들이 나보다 빨리올 때도 있으나, 나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오늘 해야될 일들을 머릿 속으로 그려본다. 뚜렷한 답은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결론 나기에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하루를 보낸다.

 

 

 

본론)

 

하지만 나는 이런 행복의 가치를 잊을 때가 있다. 내 생각에 사로 잡혀 있을 때가 그렇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 내 고집이 드러나서 일을 그르친다. 그러다 보면 나의 영은 흔들리게 되고, 불행하게 변하고 만다. 이런 영적 상태는 하루 이틀, 한 번 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나의 본성은 늘 그랬고, 그렇게 흘러 오고 있었다. 최대한 이것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 필요했는데 지금 나는 평온함을 가진 상태다. 말씀이 함께 하면 흔들리지 않고, 무뎌진 듯하나 견고해진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진짜 힘이다. 무시하는 힘이다. 나아가 내가 어떻게 교회를 오 되었는 지 깊게 생각해 본다. 2012년 10월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친구. 교회 다니는 녀석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먼저 물었고, 두 번의 튕김 끝에 세 번만에 찾게 되었다. 물어 보다 정확히 한 달 만이었다. 영접한 그날 이후 그 친구는 매주 나에게 전화를 하였으며, 힘겨웠던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뭣 모르고 시작했던 신앙 생활이 이제는 친숙해졌다. 어떻게 받은 복음이고, 구원인데 이것을 잊으려 할까? 무시하는 힘은 지속하고 있을 때 누려 지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것이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복음이다. 나 역시 매일 매일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으면 잊게 된다. 한 번은 죄스러운 마음이 들고, 두 번은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세 번은 그러려니 하고, 네 번째 부터는 그냥 그렇게 된다. 이것에 내 삶이 된다는 의미이다. 발걸음을 이을 때 그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어 있으며, 발걸음을 돌렸을 때 돌린 발걸음은 또 다시 자연스러워진다. 이것이 창세기3장에서 비롯된 우리의 근본문제인 것이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눈에 안 보이는 우울과 염려, 근심, 걱정 등 암울과 같은 상처에 끌려 산다. 눈에 보이지 안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여달라 말하기 전에 눈에 안 보이는 우울, 염려, 근심, 걱정 등의 상처에서 벗어나라.

 

 

창세기3장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요한복음8장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결국 오랫동안 숨겨진 문제들이다.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지만, 이것을 믿음을 사라지게 하는 거짓들이 늘어 난 것이다. 이 거짓들이 쌓이고 싸여 결국 진실을 가려 버렸으니, 나 또한 진실을 가리는 읽에 일조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아니 반성이 아니라 최대한 진실을 전하고자 노력해 본다.

 

 

 

 

 

로마서1장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모른다. 회사라는 공간을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아서 카드회사를 들어갔다가 두 달 만에 뛰쳐나와 들어온 곳이 광고대행사였다. 영업 이익이 없는 나를 7개월 동안 월 80만원씩 주며 일을 하게 해줬던 회사에 감사하다. 짤릴 법했던 순간 나를 관리부서로 옮겨 준 것도 감사하다. 벗어나고 싶을 때 나를 선택해준 사람이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했을 때 회사를 나왔으나, 일이 없어 빈둥 거렸을 때 나를 불러 준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까지도 광고대행사에서 근무를 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고 있다. 이것이 복음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로마서 1장 2절에서 4절은 참으로 친숙하며 묵상하기 좋은 말씀이 담겨 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말씀은 지금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지난 8년 간의 삶을 요약해 놓은 것 같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 지 몰랐던 과거, 내 의에 따라 행하려 했던 길을 넘어 하나님의 뜻과 의를 바르게 알고 행하기 시작하니 현장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나의 현장.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뜻이 무엇인지 참으로 뒤 늦게 깨닫게 되었다.

 

요한복음 5장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20장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나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흥망성쇠가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말하였으나, 나는 아직 오직을 붙잡지 못하였나 보다. 말씀의 깊이를 얼마나 알고 있는 지 가늠하지 못한다. 나는 얼마나 진솔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지 모른다.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자신감이 어디에서 오는 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성경에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이유는 나를 바로 알기 위함이다. 나는 나를 바로 알지 못하였으니 말씀을 통해 나를 바로 알고자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런데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은 아닐까? 수 많은 생각을 병행하며 갈피를 잊기 때문에 돌아보고 생각하고, 복음 안에서 비전을 꿈꾼다. 지금 나는 혼자 타이핑을 하며 글을 쓰고 있으나, 내 옆에는 타이핑을 하는 동료가 있고, 기침을 하는 대표님과 마우스를 클릭하는 이사님이 계신다. 그리고 외근을 가신 차장님까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것이 임마누엘이다. 결혼은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혼자이나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으면 행복하다는 진리를 이렇게 또 복음으로 깨우친다. 엄마 잃은 고아는 엄마를 만나는 것이 복음이고, 공부하는 학생은 가르쳐 주는 선생님을 만나야 복음이다. 나는 혼자 일할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복음을 만났다. 다시 교회로 돌아가 청년예배를 주관하는 청년이지만 혼자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시스템은 기계를 혼자 다루기 때문에 혼자라는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지금 있는 청년들은 부사수를 만나는 것이 복음이고, 시스템을 만져보고 싶은 사람들은 사수를 만나는 것이 복음인 것을 왜 어렵게 인도하시는 걸까?

 

 

예수그리스도를 붙잡은 사람은 절대 실패할 수 없다

 

마태복음16장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풍랑이 몰아쳐도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리 강한 바람과 비가 와도 반석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반석이다. 믿음의 집을 짓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한다.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절대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것. 거기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터 시작하면 반드시 책임을 지신다. 나의 감각이 무뎌진 것은 아마도 이런 믿음이 굳건해져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짓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다.

 

 

매일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

 

다니엘 6장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멈춤의 시간이란 감사를 고백하는 시간이다. 무언가 쫓기듯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고 감사를 고백해보라. 삶의 모든 것이 감사하고,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될 것이다.

 

에베소서1장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예배의 자리를 비우지 말라. 나는 지금 하는 일을 1년간 내려 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영방송국에서 일했었다. 물론 그것도 후배의 도움을 받았기에 감사했던 순간이다. 그러나 잦은 지방 촬영으로 인해 주일 예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의 영적 상태는 날이 갈수록 황폐해져 갔으나, 육체적으로는 건강해졌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다.

 

 

사도행전16장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나의 부모님과 형, 누나들 다 수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2남 7녀 중 신앙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은 나와 넷째 누나 정도? 아버지께서 소싯적에 교회를 다녔으나 여호와의 증인이었나 보다. 4주 정도 다니시다가 이상해서 안나가셨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집은 아직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이 있는 거 같다. 형은 나에게 교회 다니니깐 무엇이 좋냐고 물어본 적도 있으니 말이다. 특히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계셨을 때 성경책을 드렸는데 한 번씩 읽어 보셨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지금은 물론... 안 보고 계시지만 한 번 씩 집에 갈 때마다 성경책을 일부러 밖에 꺼내 놓는다. 신앙 생활을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복음 메세지를 아버지와 어머니께 말씀 드렸던 적이 있는데 영접 메세지는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속이 시원하셨다고 하셨다. 엄마는 아버지께서 교회를 다니시면 함께 다니신다고 하니 아버지께 복음 메세지 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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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야곱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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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전도자의 생각

 

2018년 11월 14일 저녁. 수요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에는 수요 기도회가 진행되었으며, 어김 없이 나는 방송실로 향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은혜를 받는다. 6년이라는 시간.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나에게는 코람데오라는 청년 선교회가 있다. 이곳에는 목사님을 비롯해 회장단이 존재하고 있으며, 총무가 있다. 수요일이 되면 총무에게 연락이 온다. 오늘 오실 수 있으세요? 자막 될까요? 오늘 좀 일찍 오실 수 있을까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형제에게 연락을 받으며 교회로 향했다. 이것도 나의 발길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나는 감사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발길이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물음표가 생겼다. 오직 그리스도라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는 은혜롭다. 나의 발걸음도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 발길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혼란이 동반하게 되었고, 내게 주어진 현장이 교회인지 가늠하기 힘들어졌다. 심플하게 생각하라. 단순해져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라. 수없이 들어왔던 말들을 가슴 속에 품으며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나는 노력했던 것일까? 아니면 체질화 되지 않는 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일까?

 

 

지난 주일은 말씀과 성찬이라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와 함께 성찬식이 있었고, 어제 있었던 수요 기도회에서는 생명의 떡을 잘 먹고 잘 전달합시다. 라는 인사로 청년회 목사님의 메세지가 시작되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했을 때 감사와 감격이 누려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주일 대예배를 마치고 청년예배에서는 하반기 새생명 초청 찬양 콘서트가 열렸고, 청년회 목사님은 '성경이 말하는 원래 사람'이라는 주제로 1부 설교가 진행되었다. 2부에서는 송명훈, 김경덕 마술사의 짧은 공연이 펼쳐졌으며,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정엽이 등장했다. 콘서트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정엽은 간증과 함께 노래로 답가를 보냈다. 실제로 가까운 거리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정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로는 하반기 새생명 초청 찬양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의에 참석했었다. 나는 시스템을 담당하는 부국장으로써 함께 했다. 그러나 찬양 콘서트가 열리기 4일 전, 갈릴리홀로 예정되었던 청년예배가 커버넌트홀로 변경되었고, 나는 방송 시스템을 다루는 역할에서 빠졌다. 컨트롤 타워가 교회 방송실 집사님으로 넘어간 것이다. 정엽의 공연과 많은 새생명들이 올 것을 예상하여 장소를 옮긴 것이다. 약간의 허탈감도 있었으나, 시스템을 다뤄야 한다는 중책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약간은 좋았다. 이것도 은혜라면 참된 은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지금으로 부터 6년 전 2012년 11월 25일 주일. 새생명 초청일에 맞춰 교회를 찾은 나는 영접하였고, 그로부터 6개월 후 세례 교인이 되었다. 마음 속에 오는 평안함이 좋았다. 세례를 받을 당시 난 교회 출석 3개월 만에 방송실을 들어갔는데 카메라를 다루시는 집사님의 영향을 받아 교회 곳곳을 촬영하러 다녔던 시기다. 당시 나를 교회로 인도했던 친구는 연애를 하고 있었고, 그 해 9월 결혼을 했는데 직장이 가까워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친구의 회사에서 다락방을 했다. 매주 그 시간을 지켜 내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평일만큼은 회사에 집중하고 싶었던 내 욕구가 컸던 거 같다. 왜냐하면 주일은 교회서 카메라를 잡아야 했기에 우선순위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카메라를 잡고, 방송실 사역을 하다 보니 나에게 촬영을 부탁했던 형 누나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그룹장이었던 누나와 청년회 회장이었던 형도 있었다. 사실 안해도 되는 거였는데 했었다. 결론은 축의금을 내고 촬영을 해 주는 상황이 발생했고, 촬영 후 오는 작업량은 평일에서의 삶을 피곤하게 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외롭지 않게 신앙 생활을 했었고, 누군가의 추억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서 좋았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있으니 1년에 한 두 번 보는 것 말고는 불편하지 않다.

 

 

수요 예배

 

맛을 보지 못하면 전하지 못한다

음식 맛을 한 번 보면 기억이 난다

복음의 맛은 금방 잊어버린다

 

육신적 치매는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적치매도 예방이 중요하다.

육신적 치매는 병원을 찾아 약을 받지만, 영적치매는 예배를 통해 말씀을 받는다.

 

 

 

1. 생각의 시작 (골로새서 3장1절~3절)

 

 

위에 것을 생각하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 사단은 우리보다 그리스도를 저 잘 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르게 한다. 내 영혼이 그리스도를 믿고 감격 했을 때 위에 것을 찾는다. 세상의 성공자들은 기부를 하지만, 예배에 성공한 자는 영혼이 살았을 때 위에 것을 생각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나의 정체성을 찾게 하셨고, 생각은 정체성에서 시작된다.

 

천국 간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땅에 것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 자녀가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말씀이 희미해진다.

 

 

 

나의 이런 상태는 말씀을 듣지 않아서 인지도 모른다. 나는 예배를 드렸다 하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성경에 등장하는 말씀들을 각인한다 했으나, 실제로 적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수요예배에 등장했던 말씀 중 한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님 자녀가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말씀이 희미해진다. 분명 큰 감동을 받고, 영감을 받았다. 그런데 단전까지 내려 오지 않는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점점 시려지는 옆구리 만큼 위장부터 시려 오는 추위는 무엇일까? 흔히 공허함이라 말하는데 가을이면 찾아오는 허전함을 나는 가을의 공허함이라 말하고 싶고, 성경 책만 읽는 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렇게 말하니 얼마 전 지역장과 밥 먹으면서 나눈 포럼 대화가 떠오른다. 레몬밤 향 허브차와 함께 현장에 대하여 1대1 대화를 나눈 후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넘겨 짚은 것처럼 교회에서 커플인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묻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몇 명의 이름이 등장하였는데 이미 청년회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소문이 날 대로 난 커플들이었다. 그다지 비밀스럽고 은밀한 커플들의 명단이 아니었기에 기대에 차지 않았다. 사실 꼭 한 명 알고 싶었던 자매가 있었지만,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가고, 나의 공허한 영적 상태가 비정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추워진 날씨 탓에서 오는 것 같다. 성경 책만 읽는 다고 해서 이런 공허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2. 생각의 변화 <골로새서 3장4절~5절>

 

 

정체성이 성립되지 않으면 분별력이 없다. 생각의 시작은 정체성, 정체성은 변화의 시작이 된다. 복음 말고는 중요한 것이 없구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복음 안에 분별력이 생기면 복음 외에는 다 양보하게 되어 있다. 요즘은 신비주의 보다 감성주의가 활동을 많이 한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다. 섞인 복음 가지고는 사단을 이길 수 없다.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말씀에 집중하는 것.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믿어지는 것이 최고의 은혜이자 감동이라는 목사님의 설교가 가슴에 맴돈다. 복음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시하는 힘이다. 세상에 창조된 것은 인간의 지혜가 더해 지는 것이 다 수이다. 그러나 창조된 것은 재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영상을 공부할 때 플라톤의 동굴이론에 대해 들었다. 허상에서 비롯된 창조 원리를 꿰뚫는 심리다. 어떤 사슬에 묶여서 뒤로 돌아보지 못하고, 동굴의 안 쪽 벽만 보고 있고, 동굴 밖에는 횟불이 있다.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어떤 것들이 그 회불의 빛에 비친 그림자를 동굴 안에 묶인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보며 살게 된다는 뜻이다. 아마도 난 지금 동굴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되고 있는 거 같다. 신앙이라는 그늘 안에서 눈에 보이는 그림자만 보며 살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에게 있는 신앙이라는 그늘은 복음이라는 그늘이다. 복음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시하는 힘이다. 바른 것을 강조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정죄한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말씀의 능력과 권세에 집중하라는 설교 메세지가 명확하게 떠오른다. 복음에 집중하다 보면 복음 안에서 힘을 얻는 분별력이 생긴다. 나에게 주신 것은 현장이다. 현장. 정말 중요하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를 교회로 인도했다면 현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곳도 교회였다.

 

골로새서 3장4절과 5절에는 이런 말씀이 담겨 있다.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아마도 나는 영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거 같다. 생각하건데 방송실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고, 나의 마음이 그 곳을 향했다. 이 발걸음의 결정은 성령이 했을 것이다. 그 곳에서 했던 역할이 다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쓰임을 다하고, 더 큰 은혜를 누리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수요예배의 제목은 전도자의 생각이었다. 오늘 이 글을 적으며 난 나의 생각을 정리 했다. 그 생각이 맞다면 기도로 응답 받을 것이라 소망한다. 사실 방송 사역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눈에 보이는 것을 쫓게 되는 나의 탐심이었다. 순종을 과장한 우상 숭배였다.

 

 

 

결론)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뇌 구조가 달라진다.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고백되어 지면 진리의 영이 거짓의 영을 밀어내고, 타인 중심의 사랑이 커진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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