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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15 전도자의 생각 <골로새서3장 1절~5절 >

골로새서 3장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전도자의 생각

 

2018년 11월 14일 저녁. 수요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에는 수요 기도회가 진행되었으며, 어김 없이 나는 방송실로 향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은혜를 받는다. 6년이라는 시간.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나에게는 코람데오라는 청년 선교회가 있다. 이곳에는 목사님을 비롯해 회장단이 존재하고 있으며, 총무가 있다. 수요일이 되면 총무에게 연락이 온다. 오늘 오실 수 있으세요? 자막 될까요? 오늘 좀 일찍 오실 수 있을까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형제에게 연락을 받으며 교회로 향했다. 이것도 나의 발길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나는 감사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발길이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물음표가 생겼다. 오직 그리스도라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는 은혜롭다. 나의 발걸음도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 발길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혼란이 동반하게 되었고, 내게 주어진 현장이 교회인지 가늠하기 힘들어졌다. 심플하게 생각하라. 단순해져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라. 수없이 들어왔던 말들을 가슴 속에 품으며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나는 노력했던 것일까? 아니면 체질화 되지 않는 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일까?

 

 

지난 주일은 말씀과 성찬이라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와 함께 성찬식이 있었고, 어제 있었던 수요 기도회에서는 생명의 떡을 잘 먹고 잘 전달합시다. 라는 인사로 청년회 목사님의 메세지가 시작되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했을 때 감사와 감격이 누려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주일 대예배를 마치고 청년예배에서는 하반기 새생명 초청 찬양 콘서트가 열렸고, 청년회 목사님은 '성경이 말하는 원래 사람'이라는 주제로 1부 설교가 진행되었다. 2부에서는 송명훈, 김경덕 마술사의 짧은 공연이 펼쳐졌으며,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정엽이 등장했다. 콘서트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정엽은 간증과 함께 노래로 답가를 보냈다. 실제로 가까운 거리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정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로는 하반기 새생명 초청 찬양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의에 참석했었다. 나는 시스템을 담당하는 부국장으로써 함께 했다. 그러나 찬양 콘서트가 열리기 4일 전, 갈릴리홀로 예정되었던 청년예배가 커버넌트홀로 변경되었고, 나는 방송 시스템을 다루는 역할에서 빠졌다. 컨트롤 타워가 교회 방송실 집사님으로 넘어간 것이다. 정엽의 공연과 많은 새생명들이 올 것을 예상하여 장소를 옮긴 것이다. 약간의 허탈감도 있었으나, 시스템을 다뤄야 한다는 중책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약간은 좋았다. 이것도 은혜라면 참된 은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지금으로 부터 6년 전 2012년 11월 25일 주일. 새생명 초청일에 맞춰 교회를 찾은 나는 영접하였고, 그로부터 6개월 후 세례 교인이 되었다. 마음 속에 오는 평안함이 좋았다. 세례를 받을 당시 난 교회 출석 3개월 만에 방송실을 들어갔는데 카메라를 다루시는 집사님의 영향을 받아 교회 곳곳을 촬영하러 다녔던 시기다. 당시 나를 교회로 인도했던 친구는 연애를 하고 있었고, 그 해 9월 결혼을 했는데 직장이 가까워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친구의 회사에서 다락방을 했다. 매주 그 시간을 지켜 내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평일만큼은 회사에 집중하고 싶었던 내 욕구가 컸던 거 같다. 왜냐하면 주일은 교회서 카메라를 잡아야 했기에 우선순위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카메라를 잡고, 방송실 사역을 하다 보니 나에게 촬영을 부탁했던 형 누나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그룹장이었던 누나와 청년회 회장이었던 형도 있었다. 사실 안해도 되는 거였는데 했었다. 결론은 축의금을 내고 촬영을 해 주는 상황이 발생했고, 촬영 후 오는 작업량은 평일에서의 삶을 피곤하게 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외롭지 않게 신앙 생활을 했었고, 누군가의 추억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서 좋았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있으니 1년에 한 두 번 보는 것 말고는 불편하지 않다.

 

 

수요 예배

 

맛을 보지 못하면 전하지 못한다

음식 맛을 한 번 보면 기억이 난다

복음의 맛은 금방 잊어버린다

 

육신적 치매는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적치매도 예방이 중요하다.

육신적 치매는 병원을 찾아 약을 받지만, 영적치매는 예배를 통해 말씀을 받는다.

 

 

 

1. 생각의 시작 (골로새서 3장1절~3절)

 

 

위에 것을 생각하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 사단은 우리보다 그리스도를 저 잘 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르게 한다. 내 영혼이 그리스도를 믿고 감격 했을 때 위에 것을 찾는다. 세상의 성공자들은 기부를 하지만, 예배에 성공한 자는 영혼이 살았을 때 위에 것을 생각한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나의 정체성을 찾게 하셨고, 생각은 정체성에서 시작된다.

 

천국 간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땅에 것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 자녀가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말씀이 희미해진다.

 

 

 

나의 이런 상태는 말씀을 듣지 않아서 인지도 모른다. 나는 예배를 드렸다 하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성경에 등장하는 말씀들을 각인한다 했으나, 실제로 적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수요예배에 등장했던 말씀 중 한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님 자녀가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말씀이 희미해진다. 분명 큰 감동을 받고, 영감을 받았다. 그런데 단전까지 내려 오지 않는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점점 시려지는 옆구리 만큼 위장부터 시려 오는 추위는 무엇일까? 흔히 공허함이라 말하는데 가을이면 찾아오는 허전함을 나는 가을의 공허함이라 말하고 싶고, 성경 책만 읽는 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렇게 말하니 얼마 전 지역장과 밥 먹으면서 나눈 포럼 대화가 떠오른다. 레몬밤 향 허브차와 함께 현장에 대하여 1대1 대화를 나눈 후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넘겨 짚은 것처럼 교회에서 커플인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묻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몇 명의 이름이 등장하였는데 이미 청년회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소문이 날 대로 난 커플들이었다. 그다지 비밀스럽고 은밀한 커플들의 명단이 아니었기에 기대에 차지 않았다. 사실 꼭 한 명 알고 싶었던 자매가 있었지만,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가고, 나의 공허한 영적 상태가 비정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추워진 날씨 탓에서 오는 것 같다. 성경 책만 읽는 다고 해서 이런 공허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2. 생각의 변화 <골로새서 3장4절~5절>

 

 

정체성이 성립되지 않으면 분별력이 없다. 생각의 시작은 정체성, 정체성은 변화의 시작이 된다. 복음 말고는 중요한 것이 없구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복음 안에 분별력이 생기면 복음 외에는 다 양보하게 되어 있다. 요즘은 신비주의 보다 감성주의가 활동을 많이 한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다. 섞인 복음 가지고는 사단을 이길 수 없다.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말씀에 집중하는 것.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믿어지는 것이 최고의 은혜이자 감동이라는 목사님의 설교가 가슴에 맴돈다. 복음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시하는 힘이다. 세상에 창조된 것은 인간의 지혜가 더해 지는 것이 다 수이다. 그러나 창조된 것은 재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영상을 공부할 때 플라톤의 동굴이론에 대해 들었다. 허상에서 비롯된 창조 원리를 꿰뚫는 심리다. 어떤 사슬에 묶여서 뒤로 돌아보지 못하고, 동굴의 안 쪽 벽만 보고 있고, 동굴 밖에는 횟불이 있다.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어떤 것들이 그 회불의 빛에 비친 그림자를 동굴 안에 묶인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보며 살게 된다는 뜻이다. 아마도 난 지금 동굴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되고 있는 거 같다. 신앙이라는 그늘 안에서 눈에 보이는 그림자만 보며 살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에게 있는 신앙이라는 그늘은 복음이라는 그늘이다. 복음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시하는 힘이다. 바른 것을 강조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정죄한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말씀의 능력과 권세에 집중하라는 설교 메세지가 명확하게 떠오른다. 복음에 집중하다 보면 복음 안에서 힘을 얻는 분별력이 생긴다. 나에게 주신 것은 현장이다. 현장. 정말 중요하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를 교회로 인도했다면 현장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곳도 교회였다.

 

골로새서 3장4절과 5절에는 이런 말씀이 담겨 있다.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아마도 나는 영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거 같다. 생각하건데 방송실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고, 나의 마음이 그 곳을 향했다. 이 발걸음의 결정은 성령이 했을 것이다. 그 곳에서 했던 역할이 다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쓰임을 다하고, 더 큰 은혜를 누리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수요예배의 제목은 전도자의 생각이었다. 오늘 이 글을 적으며 난 나의 생각을 정리 했다. 그 생각이 맞다면 기도로 응답 받을 것이라 소망한다. 사실 방송 사역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눈에 보이는 것을 쫓게 되는 나의 탐심이었다. 순종을 과장한 우상 숭배였다.

 

 

 

결론)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뇌 구조가 달라진다.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고백되어 지면 진리의 영이 거짓의 영을 밀어내고, 타인 중심의 사랑이 커진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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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야곱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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